건강한 리버럴과 진정한 보수는 ‘한 배’를 탈수 있다

(8분 ~ 11분) 보수는 절대적 선악 구분에 눈감을 수 없다.

’리버럴’은 절대적 도덕 개념이 ‘아직’없는 상태의 인간. (정치학에서의)

진실존중과 당사 내한을 따르는 리버럴은 ‘건강한 리버럴’
선배 세대부터 미래의 세대로의 연속성을 고민하는 ‘당사 내한’

박근혜에게 ‘마키아벨리즘’이 있을 리 없는 이유

박근혜에게 마키아벨리즘이 없다는 것을 탓하는 자들에게 간곡히 드리는 부탁이 있다.  대한민국 정치판에 ‘총재’라는 보스 정치가 언제 사라졌는지 되짚어 보시라는 것이다.

제왕적 정치 권력을 쥐고 흔들던 총재가 사라지면서 분명히 이 나라의 정치판은 혼란스러워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천권, 인사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던 총재가 사라지면서 어떤 ‘Next 정치’가 가능해졌었는지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런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친이니 친박이니 하는 껍데기가 아니라 ‘정치인 박근혜’의 진면목이 보일 것이다. 이회창의 정당운영을 두고 ‘제왕적 정당운영’이라면서 반발, 탈당을 감행했던 의아함. ‘왜 저렇게 행동하지?’라는 그 근본적인 의문이 풀리게 될 것이다.

아버지 박정희가 미처 못 이루고 떠난 꿈을 거의 딸이 온갖 저주와 비아냥 속에서도 끝끝내 열어젖혔다는 놀라운 사실이 눈에 들어올 것이라고 말이다. 박정희가 정말로 잔인무도한 독재자였다면 그의 정적들이 살아남아있을 수가 있었을까? 박근혜가 정말로 제왕적 통치를 했고, 제왕적 정당운영을 했더라면 지금 ‘친이’ 혹은 ‘반박’이라고 불리는 그런 그의 정적들이 여의도에 남아있을 수가 있었을까? 노무현 탄핵 정국으로 인해 일어났던 정치적 쓰나미에서 살아남아서?

이렇게 말하면 ‘지독한 박빠’라고 할테지만

약자의 시각, 가난한 자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내 삶을 내가 결정한다는 ‘개인’ 그리고 주체적인 판단과 스스로의 사고를 진정 할 수 있게 된다면 박정희가 끝끝내 이루고자 했던 정치적 이상향과 박근혜의 어눌하고 속내를 알수 없어 보이던 정치적 행보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게 보일 것이다.

어차피 우리에게 시간은 아직 남아있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외쳤지만 정작 중요한 역사적 진보를 향한 버스에 올라타지도 못한 문재인과 그의 일당들 덕분에, 그리고 그를 견제하고 그 중차대한 역사적 진보의 버스에 올라타게끔 힘을 써야할 자한당이 꼭같이 개판을 치며 시간을 마냥 잡아먹고 있는 덕에 우리는 구한말처럼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고 개척할 기회를 잃었다.

덕분에 역설적으로 그 참극 때문에 ‘시간’이 우리에게는 있다. 약 1년 정도의 시간. 이 시간을 ‘홀로 깨어 고뇌하는 개인’으로써 보낼 수 있다면 이 나라는 다시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수컷 etoile.

괴물들과 싸워야 하는데

 

좋은 학교가 아니라 애초에 취직하기가 힘들었다. 때마침 이사장에게 반기를 든 교수와 ‘아다리’가 맞았다. 해서 이 학교는 ‘학내분규’로 유명한 사학이 됐었다.

처음에는 공부하기 싫어서가 가장 큰 이유였는데 뱅모의 말처럼 격렬하게 데모를 하다보니 학교측에서 타협안으로 제시하는 ‘뽀찌’가 마음에 들었다. 자판기였고, 졸업앨범이었고, 졸업여행 등이었다. 쏠쏠했다.

현찰이 생기니 하는 일에 힘이 붙고, 탄력이 붙었다. 어차피 공부로 승부보기 힘든 학교였으니 쿵짝이 맞는 수준들의 학생이 널렸다. 학내분규는 이어졌고 이 비즈니스를 시작했던 학생은 어느새 ‘전설의 선배’가 됐다. 그 전설의 선배는 그러나 현실에 나가서 높은 벽과 맞닥뜨렸다. 어찌어찌 교수의 추천서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갈취채 대기업 금융계열사에 취업은 했으나 실력으로 버티기가 난망이었다.

결국 회사에서 나왔다. ‘쫓겨났다’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았다. 제 발로, 더러운 대기업이라는 조직에 혐오를 느껴서라고 포장을 하면 됐으니까. 그렇게 사회로 밀려난 전설의 선배는 일반 서민들에게 솔깃한 아이템을 잡아서 따르는 동지도 없는 단체를 만들었고 그 단체의 ‘장’이 됐다.

내막이야 어떻든 시민단체의 장이 됐으니 쿵짝이 맞는 그지 발싸개 같은 찌라시들에게 ‘내 얘기 좀 실어달라’고 했고 그렇게 ‘언론빨’ 몇번 타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좌파 소굴이 된 출판사를 골라잡아 책을 냈다. 물론 서평실어줄 기레기들이나 인터넷 서점등에도 좌파 소굴이고 한다리 건너면 죄다 ‘같은 운동 식구들’ 소굴이니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어엿한 전문분야의 전문가로 포지셔닝이 됐다.

모 대선캠프의 숱하게 많은 무슨무슨 분과의 대표가 됐고 결국 막대기만 세워도 당선이 됐던 선거에 무슨 당의 후보로 출마, 당선이 됐다. 그렇게 그 전설의 선배는 ‘국회의원 나리’가 됐다. 1000% 실화다.

이런 비즈니스가 가능한데 ‘좌파’라 부르든 ‘진보’라 부르든 그 바닥에 솔깃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해서 ‘우리’ 가 진정으로 좋은 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진실이 존중받고, 공정한 사회, 땀흘리며 노력하는 사람들이 존경받는 국가를 지향한다면 우리의 싸움은 ‘노골적으로 명확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철저하게 오합지졸이고 ‘아웃사이더’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이길 수 있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둘중 하나다.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그럴수밖에 없거나다. 미안하다.

뱅모선생, 존경한다. 방송은 거의 다 챙겨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기기 힘들다. 앞날에는 희망이라고는 거의 없다. 해서 냉정해야 한다. 뱅모가 방송에서 열변을 토하는 그 많은 정신적 각성과 수련들 그건 물론 필요하다. 절대적으로

하지만 그건 장삼이사들에게는 불가능하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매우 지적으로 고민하고 자기 확신이 붕괴되고 수습하는 괴로운 과정을 숱하게 반복해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도, 능력도, 힘도 부족하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해서 이 싸움은 달라야 한다. 원칙론은 결코 양보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지켜야 하지만 능글맞고 징그럽고 집요하게 싸워야 한다.

진흙밭에 떨어졌는데 얼굴이나 옷이 깨끗하기를 바랄수는 없는 법이다. 해서 지금은 진흙밭 개싸움을 할줄 아는 싸움꾼이 필요하다. 한데 안타깝게 아무도 없다. 그저 말뿐이다.

해서 ‘어쩔수 없이 다시 박근혜’다. 그리고 박근혜는 문재인 5년동안에는 결코 자유의 몸이 되지 못한다. 김정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희망과 현실은 정확하고 엄격하게 구분하자. 보수든 우파이든 더 깨지고 박살날 ‘쾌’가 남았다. 내년 총선이다. 불을 보듯 뻔한 수순이다. 내년 총선까지 ‘박근혜’를 집요하게 씹어대는 병신들과 그런 놈들에게 어떻게든 줄을 대려는 자칭 보수 시민 세력들이 아귀다툼을 벌인다. 그걸 피할수가 없다. 이게 지금 우리 수준이다.

해서 ‘우리’는 내년 봄 총선까지 철저하게 깨져서 ‘우리가 이렇게 밑바닥이었구나’라고 절망의 밑바닥과 만나야 한다.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때까지는 철저하게 ‘홀로 고민하는 개인으로써의 겨울’을 보내야만 한다.
그래야 ‘시작’이 될 수 있다.

수컷 eto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