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8의 진실은 이제 겨우 2단계

소위 ‘서울서 내려온 연고대생 600명’에 대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그 주장이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는 의외로 간단하게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80년 5월 광주에 내려온 연고대생’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누구일까? 몇학번일까? 신입생이라면 80학번이다. 연고대생 80학번부터 역순으로 찾아올라가면 된다. 위로 가면 몇학번까지 가능할까? 군대를 현역으로 갔다가 복학한 4학년이 1년 휴학을 했다 생각해보자. 최대 ‘10년’이다. 즉, 연고대 70~80학번을 전수조사해보면 ‘서울서 내려온 연고대생 6백명’을 찾을 수 있다.

또 하나,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뱅모에게라면 말할 용의가 있다. 계엄군은 ‘표적 사격한 적 없다’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광주 사태 사망자 중 계엄군이라는 현역 군인만 소지했던 M16 소총의 탄환이 나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게 5.18을 무장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늘 곤혹스러운 문제다. 계엄군은 ‘쏘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현역군인의 총알이 사망자의 시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한데 이 문제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증언이 있다. 자칭 ‘시민군’ 혹은 ‘서울서 내려온 연고대생 6백명’이 현역 군인이 사용하는 M16의 소총을 갖고 있을 수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능케 해주는 중요한 증언이다.

안타깝지만 5.18문제의 ‘진실’에 접근하려면 조갑제의 어설픈 이성도, 지만원의 뜨거운 열정도 모두 답이 아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 증언을 공개할 생각이 있다.
누구라도 ‘그럴 수도 있었겠다’라고 생각할 합리적 의심.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아주 지독하리만큼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해야만 합니다. 지금에 와서야 이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지만 이 문제를 앞장서서 풀어나갈 사람이 이미 깊은 함정에 빠져있습니다. 더 길게 얘기를 하면 발끈하실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왜 발끈하실지는 익히 잘 알지만 박주신 문제를 조갑제라는 사람이 엉망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5.18문제는 지만원씨를 빠뜨리기 위한 함정이 있고 안타깝게도 지만원씨는 그 함정 깊숙히 들어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은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만, 이것 한가지만은 힌트 드릴수 있습니다. 북한군 특수군이든 서울서 내려온 연고대생 600명이든 그들이 M16을 이미 갖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아예 배제하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과연 없을까요?

어차피 5.18문제는 한번 공론화 되어야만 하지만 ‘함정’을 피해나갈 중지가 현재로써는 없기 때문에 조갑제가 망친 박주신 문제처럼 수면 깊숙히로 다시금 가라앉을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해서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뱅모의 말처럼 북한 해방이 멀지 않았으니 그곳에서부터 진실의 실마리가 풀려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제발 5.18문제 자체와 지만원 박사 개인을 동일시해서 접근하면 이 문제는 절대로 우리가 풀수 없는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됩니다. 왜 그걸 아직도 모르십니까?

싸워서 이기기 힘든 전투를 해야할 때에는 맞서 싸울게 아니라 적의 대오를 느슨하게 하고, 적들의 동맹을 와해시켜야 하는 법입니다.

쉽게 말씀드릴까요? ‘5.18이 과연 민주화 투쟁이었나?’하는 의심을 심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게 힘없는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투인 겁니다.

제 눈에는 어렵사리 공론화가 본격화가 되더라도 그 결과가 어떠할 지 눈에 뻔히 보입니다. 피 눈물 흘리는 ‘우리들’ 그리고 흑막속에서 사악하게 웃고 있을 다수들 그리고 ‘그럼 그렇지’라고 비웃을 무지한 절대 다수들.

제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는 싸움’과 ‘지지 않으면 만족인 싸움’을 구분합시다.

박근혜에게 ‘마키아벨리즘’이 있을 리 없는 이유

박근혜에게 마키아벨리즘이 없다는 것을 탓하는 자들에게 간곡히 드리는 부탁이 있다.  대한민국 정치판에 ‘총재’라는 보스 정치가 언제 사라졌는지 되짚어 보시라는 것이다.

제왕적 정치 권력을 쥐고 흔들던 총재가 사라지면서 분명히 이 나라의 정치판은 혼란스러워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천권, 인사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던 총재가 사라지면서 어떤 ‘Next 정치’가 가능해졌었는지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런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친이니 친박이니 하는 껍데기가 아니라 ‘정치인 박근혜’의 진면목이 보일 것이다. 이회창의 정당운영을 두고 ‘제왕적 정당운영’이라면서 반발, 탈당을 감행했던 의아함. ‘왜 저렇게 행동하지?’라는 그 근본적인 의문이 풀리게 될 것이다.

아버지 박정희가 미처 못 이루고 떠난 꿈을 거의 딸이 온갖 저주와 비아냥 속에서도 끝끝내 열어젖혔다는 놀라운 사실이 눈에 들어올 것이라고 말이다. 박정희가 정말로 잔인무도한 독재자였다면 그의 정적들이 살아남아있을 수가 있었을까? 박근혜가 정말로 제왕적 통치를 했고, 제왕적 정당운영을 했더라면 지금 ‘친이’ 혹은 ‘반박’이라고 불리는 그런 그의 정적들이 여의도에 남아있을 수가 있었을까? 노무현 탄핵 정국으로 인해 일어났던 정치적 쓰나미에서 살아남아서?

이렇게 말하면 ‘지독한 박빠’라고 할테지만

약자의 시각, 가난한 자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내 삶을 내가 결정한다는 ‘개인’ 그리고 주체적인 판단과 스스로의 사고를 진정 할 수 있게 된다면 박정희가 끝끝내 이루고자 했던 정치적 이상향과 박근혜의 어눌하고 속내를 알수 없어 보이던 정치적 행보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게 보일 것이다.

어차피 우리에게 시간은 아직 남아있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외쳤지만 정작 중요한 역사적 진보를 향한 버스에 올라타지도 못한 문재인과 그의 일당들 덕분에, 그리고 그를 견제하고 그 중차대한 역사적 진보의 버스에 올라타게끔 힘을 써야할 자한당이 꼭같이 개판을 치며 시간을 마냥 잡아먹고 있는 덕에 우리는 구한말처럼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고 개척할 기회를 잃었다.

덕분에 역설적으로 그 참극 때문에 ‘시간’이 우리에게는 있다. 약 1년 정도의 시간. 이 시간을 ‘홀로 깨어 고뇌하는 개인’으로써 보낼 수 있다면 이 나라는 다시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수컷 etoile.

괴물들과 싸워야 하는데

 

좋은 학교가 아니라 애초에 취직하기가 힘들었다. 때마침 이사장에게 반기를 든 교수와 ‘아다리’가 맞았다. 해서 이 학교는 ‘학내분규’로 유명한 사학이 됐었다.

처음에는 공부하기 싫어서가 가장 큰 이유였는데 뱅모의 말처럼 격렬하게 데모를 하다보니 학교측에서 타협안으로 제시하는 ‘뽀찌’가 마음에 들었다. 자판기였고, 졸업앨범이었고, 졸업여행 등이었다. 쏠쏠했다.

현찰이 생기니 하는 일에 힘이 붙고, 탄력이 붙었다. 어차피 공부로 승부보기 힘든 학교였으니 쿵짝이 맞는 수준들의 학생이 널렸다. 학내분규는 이어졌고 이 비즈니스를 시작했던 학생은 어느새 ‘전설의 선배’가 됐다. 그 전설의 선배는 그러나 현실에 나가서 높은 벽과 맞닥뜨렸다. 어찌어찌 교수의 추천서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갈취채 대기업 금융계열사에 취업은 했으나 실력으로 버티기가 난망이었다.

결국 회사에서 나왔다. ‘쫓겨났다’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았다. 제 발로, 더러운 대기업이라는 조직에 혐오를 느껴서라고 포장을 하면 됐으니까. 그렇게 사회로 밀려난 전설의 선배는 일반 서민들에게 솔깃한 아이템을 잡아서 따르는 동지도 없는 단체를 만들었고 그 단체의 ‘장’이 됐다.

내막이야 어떻든 시민단체의 장이 됐으니 쿵짝이 맞는 그지 발싸개 같은 찌라시들에게 ‘내 얘기 좀 실어달라’고 했고 그렇게 ‘언론빨’ 몇번 타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좌파 소굴이 된 출판사를 골라잡아 책을 냈다. 물론 서평실어줄 기레기들이나 인터넷 서점등에도 좌파 소굴이고 한다리 건너면 죄다 ‘같은 운동 식구들’ 소굴이니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어엿한 전문분야의 전문가로 포지셔닝이 됐다.

모 대선캠프의 숱하게 많은 무슨무슨 분과의 대표가 됐고 결국 막대기만 세워도 당선이 됐던 선거에 무슨 당의 후보로 출마, 당선이 됐다. 그렇게 그 전설의 선배는 ‘국회의원 나리’가 됐다. 1000% 실화다.

이런 비즈니스가 가능한데 ‘좌파’라 부르든 ‘진보’라 부르든 그 바닥에 솔깃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해서 ‘우리’ 가 진정으로 좋은 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진실이 존중받고, 공정한 사회, 땀흘리며 노력하는 사람들이 존경받는 국가를 지향한다면 우리의 싸움은 ‘노골적으로 명확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철저하게 오합지졸이고 ‘아웃사이더’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이길 수 있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둘중 하나다.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그럴수밖에 없거나다. 미안하다.

뱅모선생, 존경한다. 방송은 거의 다 챙겨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기기 힘들다. 앞날에는 희망이라고는 거의 없다. 해서 냉정해야 한다. 뱅모가 방송에서 열변을 토하는 그 많은 정신적 각성과 수련들 그건 물론 필요하다. 절대적으로

하지만 그건 장삼이사들에게는 불가능하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매우 지적으로 고민하고 자기 확신이 붕괴되고 수습하는 괴로운 과정을 숱하게 반복해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도, 능력도, 힘도 부족하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해서 이 싸움은 달라야 한다. 원칙론은 결코 양보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지켜야 하지만 능글맞고 징그럽고 집요하게 싸워야 한다.

진흙밭에 떨어졌는데 얼굴이나 옷이 깨끗하기를 바랄수는 없는 법이다. 해서 지금은 진흙밭 개싸움을 할줄 아는 싸움꾼이 필요하다. 한데 안타깝게 아무도 없다. 그저 말뿐이다.

해서 ‘어쩔수 없이 다시 박근혜’다. 그리고 박근혜는 문재인 5년동안에는 결코 자유의 몸이 되지 못한다. 김정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희망과 현실은 정확하고 엄격하게 구분하자. 보수든 우파이든 더 깨지고 박살날 ‘쾌’가 남았다. 내년 총선이다. 불을 보듯 뻔한 수순이다. 내년 총선까지 ‘박근혜’를 집요하게 씹어대는 병신들과 그런 놈들에게 어떻게든 줄을 대려는 자칭 보수 시민 세력들이 아귀다툼을 벌인다. 그걸 피할수가 없다. 이게 지금 우리 수준이다.

해서 ‘우리’는 내년 봄 총선까지 철저하게 깨져서 ‘우리가 이렇게 밑바닥이었구나’라고 절망의 밑바닥과 만나야 한다.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때까지는 철저하게 ‘홀로 고민하는 개인으로써의 겨울’을 보내야만 한다.
그래야 ‘시작’이 될 수 있다.

수컷 etoile

다시 박근혜다

오바마와 힐러리는 뜻뜨미지근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박근혜는 ‘김정은을 무너뜨리겠다’라고 결심을 했다. 김정은이 십수년만에 들통나기 십상인 난수방송을 2016년에 재개한 것은 그런 까닥에서다.

그 2016년 한반도의 두 체제는 명운을 건 대회전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바마가 반대를 한대도 한미연합 전력에 포함되지 않는 어마무시한 전력을 투입할 각오를 천명했다. 그게 문재인이 들어오자마자 불명예스럽게 쫒아냈던 군인, 박찬주 대장 사태의 본질이다.
미육군을 빼면 누구도 쉽게 제압하기 힘들다는 전력 ‘제 7기동군단’을 가장 잘 지휘할 수 있는 군인이었으니까. 결국 ‘설마’라고 했던 ‘등뒤의 배신자’ 덕분에 대통령 박근혜는 죽었고, ‘김정은을 몰아내기 위한 거대한 체스판’을 만들어 놓았던 플레이메이커도 함께 죽었다.
만약 개성공단이 가동중이고, 사드가 배치되지 못한 상태였다면 트럼프의 한반도 운신도 상당한 시일을 잡아먹었어야 했다. 해서 뱅모가 말하는 ‘한반도 대운’의 개운에 ‘대통령 박근혜의 몫’이 있다. 그걸 어떻게 해서든 우리가 챙겨야 한다.
‘개인 박근혜’가 너무나 안타까워서 뿐만 아니라 지독히 냉정한 의미에서 ‘써먹을 수 있는 카드’가 달리 없기 때문이다. 해서 ‘다시 박근혜다’라고 외쳐야 한다.
그리고 트럼프에게 시진핑이 무너지기 직전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지를 지켜보면 대통령 박근혜가 전승절 망루에서 시진핑에게 했을 ‘제안’이 무엇이었을지에 대해 그제서야 조금쯤 짐작하는 사람이 나올 지도 모른다. ‘실로 엄청난 모험을 각오했었구나’라는 걸 짐작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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