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후인

억겁 윤회에서도,
언젠가 이 날이 찾아오리라는 걸 나는 알고있었습니다.

당신이 내게 찾아오는 이 날을.
언젠가 이 날이 찾아오면 당신에게 드릴 것을 준비했습니다.
그건 오직 당신만이 기억할 수 있는 나의 공후인입니다.

내가 감당하기도 힘들만큼 벅찬 나의 숙명을 안고
지쳐 쓰러질 수 있는 단 하나의 마음

그곳이 바로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의 윤회가 조금씩 일러주었던
당신의 포근한 가슴입니다.

당신이 내 곁에 있겠다고 말씀만 해 주신다면,
나는 언제고 당신을 그리워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내 곁에 있겠다고 말씀만 해 주신다면
나는 그제야 비로소 이 지친 윤회를 끌낼 수 있습니다.
길고도 길었던 全生을 …

그 옛날 당신이 나를 떠나 그 강을 건너 가버리신 후
나는 세월에 잠겨 공후인과 슬퍼했습니다.

당신이 내 곁에 있겠다고 말씀만 해주신다면,
당신이 또 다시 그 강을 건너가신다 해도
나는 이제 슬픈 공후인을 타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내 곁에 있겠다고 말씀만 해 주신다면,
나는 이제 당신의 강에서 이 길고 길었던 윤회를 마치겠습니다.

 

꿈 꾸듯, 당신의 곁에서 행복의 미소로…

공후인

 

오랜 노래 ‘공무도하가’를 읽고

그리하여, 그리고 내 마음에도. 꽃.

 

아마도 첫 책 ‘겨울과 좋아하는 코트’가 나왔을 때의 일이다.
그 역시 내게 귀한 인연이 된 이가 쓰기를

‘바닥까지 내려가본 자만이 쓸 수 있는 절실한 진솔함’

하지만 돌이켜보면 존재가 떨어질 수 있는 바닥은
따로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일말의 기대가 깨어지고 무너지기를 반복해 급기야는
아무런 희망이나 계획을 갖지조차 못할 지경이 될 즈음에야
운명의 신이 가여이 여겨주시는 것뿐이다.

깊이로 따진다면야 정말 깊디 깊은 바닥으로 향하는
어느 가파른 절벽에 튀어나온 돌뿌리 쯤에

채 부러지지 못한 허리가 물을 잔뜩 먹은 아교처럼 휘어져
간신히 걸쳐져 있을 때쯤
그가 거쳐야할 ‘바닥’에의 체험이 일단락되는 것이다.

아마 작은 무저갱 같은 그곳에서 나는 간신히 눈꺼풀을 뗄 수 있었고
그리고 나보다 더 참혹한 지경에서 피어있는 꽃 한송이를 볼 수 있었다.

힘없이 가냘픈 잎과 굵고 투박한 줄기가 마치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그것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고,
부들대는 두 손으로 꽃을 감싸 들었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드디어.. 꽃. 

 

꽃을 받쳐들고 올라오는 길은 그래도 길고 거칠었지만
떨어지고 있던 그 영원같았던 시간들보다는 훨씬 나았다.

내 존재가
플러그가 뽑혀 길바닥에 흉하게 널부러진 춤추는 풍선인형처럼
그냥 서 있을 힘도 없을 때에조차

곁에서 내가 머무는 작은 공간을 향기로 가득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고 내 마음에도

꽃. 

봄밤 보름밤 달밤

낮에 떠있는 하얀 달을 참 좋아합니다
순결한 사람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냥 ‘낮에도 달이 떠있구나’ 하는 새삼스러울게 하나 없는 사실이
마음에 청량감을 던져주곤 하는 까닭일 겁니다

청명하게 맑은 봄날의 어느 밤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봄밤 보름밤 그리고 달밤

생각해보면 달이 참 좋습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것들이 겹쳐 등장하던 그 청명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보름달의 맑고 밝은 빛으로
하늘이 무척이나 환했던 봄의 구름 한점 없이 맑고 깊은 밤의 일입니다

문득 넋을 놓고 달을 쳐다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처럼 아주 밝고 맑은 존재가 밤의 검은 장막 저 뒤편에 존재하고 있는데
오백원짜리 동전만큼의 구멍이 그 장막에 뚫려있어
그 밝은 빛이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자세하게 몇번이고 몇날이고 보름의 달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어느새 밤의 검은 장막 뒷편의 밝은 빛을 모두 볼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빌어봅니다
내가 문득 만들어 놓은 장막을 내가 다 걷어내면
오해도 사지 않고 빙빙 돌려서 우물거리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인연 하나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내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장막 때문에 여태 만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더도 덜도 말고
인연 딱 하나만 말입니다

청명하게 맑은 봄날
투명하게 밝은 낮달이라도 뜬 날에
손잡고 여기저기를 거닐며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싶은 여자

그런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 한데, 꽤 어렵지 싶은 … 그런 봄날입니다

 

봄밤 보름밤 달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