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허름한 책방에서의 섹스

“성적(性的) 판타지가 뭔가요?”
그 여자가 물었다.
그에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저 무언가가 말하고 싶었다.

 

딱히 그런 게 없는데 …

“오래되고 허름한 서점에서 섹스해보고 싶긴하네요.”
詩 읽다가 키스를 하면 좋겠어요“
여기 어디쯤에 약간 남은 게 있으면 살아나지 않을까 싶은데.
‘로맨스’라는 거

요리 책을 읽다가 도마와 칼이 그대로 놓여져 있는 치우지 않은 주방 식탁위에서 섹스를 하는 상상을 하는 거죠.

책방에서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방’이니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 女子가 곁에 있다면.
아픈 그 女子를 두고 떠났거든요.

 

낡고 허름한 책방에서의 섹스

철판이 얇은 자동차가 좋은 밤

더도 덜도 말고
꼭 이만큼의 비가 내리는 밤에는
철판이 얇은 자동차가 좋습니다.

골목이 좁고 긴 슬레이트가 있는 처마 밑에
철판이 얇은 자동차를 절반만 걸쳐 놓습니다.
슬레이트 골을 타고 빗소리가

토도동  토도동 ~

하는 소리가 좋아서.
철판이 얇은 자동차가 좋은 밤

오늘은 2009년 3월 21일 22시 52분, 나는 무슈집센입니다

weeping magician

그날 따라 신경질적으로 보이던 높은 의자 등받이에 의지하고 있는 마술사가 그렇게 왜소해 보인 적은 없었다. 

쇼는 이미 끝났고 관객들은 이제는 올드해진 마술쇼만큼이나 싸구려틱했다. 열렬한 휘파람 따위는 없었고 한두번 들리던 진심어린 관객의 박수소리도 이젠 마술로도 기억해내지 못할 오래전의 일일 뿐이었다.

상체를 쓰러진듯 구부리고 있는 마술사의 두툼한 오른손은 그리 크지도 않았지만 얼굴 대부분을 덮고 있었다. 예전에는 무척이나 섬세하게 보였던 마술사의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온 머리카락도 제 주인처럼 쓰러질듯 흘러내려있었다. 마술봉도 이미 바닥에 떨어졌을 터이지만 한껏 풀죽은 몇개의 손가락의 구부러진 형태 때문에 마술사의 왼손에 그저 꼽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두툼한 손바닥 때문인 것 같았다.

그때였다. 이미 죽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불러내 듀엣으로 불렀다던 나탈리 콜의 Unforgettable이 전류음이 신경질적인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이런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노래다. 얼마되지 않던 관객은 모두 떠난 객석앞 허리 높이정도의 무대에는 커튼도 닫혀있질 않았고 어둑어둑한 보조조명이 신경질적으로 높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 앉아 있는 마술사의 수구린 어깨 말고는 비춰줄 게 없는 이제는 3류 재즈바의 풍경에도 잘 어울리는 노래.

관객들과 오늘도 저조한 매상 때문에 초조한 주인이 빡빡빡 피워댔던 싸구려 시가의 연기도 비 내린 새벽의 안개 비린내처럼 바닥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누가 굳이 깨지만 않는다면 평온이랄 수도 있는 적막함이 바를 감고 있었다.

마술사의 검지손가락이 뜨끔하고 움직였다. “주문을 외워주세요”
마술사는 고개를 들었다. ‘누구지?’

“주문을 외워주세요”

오른손을 그쪽 무릎에 얹고 힘을 주며 마술사는 몸을 일으켰다. 주문이 아니고서는 일어설 수조차 없을 것같은 힘겨운 몸이었다. 전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너로구나. 예쁜 꼬마 아가씨” 앞머리를 일자커트한 작은 여자아이가 무대 바로 앞에 서있었다. 객석 바로 앞까지 다가오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을만큼 작은 여자 아이였다.

“주문을 외워주세요”

정말로 마법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명이라고는 대부분 다 꺼진 컴컴한 공간에서 여자 아이의 눈동자만큼은 눈이 부실만큼 빛이 났고 마술사는 그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으 … 음 … “아저씨는 더 이상 주문을 외우지 않는단다” 마술사는 말했다.
“왜요?” 아이가 물었다.
“음 … 아저씨 가슴속에 분홍색 안개가 사라졌기 때문이란다.”
마술은 사실이 아니라는 말을 차마 할수가 없었다.

“주문을 외워주세요” 아이의 목소리는 위엄있었고 단호했다.
으 … 음 …  바짝 말라버린 입술을 서로 오무려 침을 뭍히려했지만 입속도 매말라 별 소용이 없었다.

“주문을 외워주세요”

마법에라도 이끌린 듯 마술사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꼬리가 긴 연미복 자켓을 바로 잡고는 높다란 모자를 고쳐썼다.
마술사는 눈을 지긋이 감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수리수리 마수리  수리수리 마수리”
“수리수리 마수리  수리수리 마수리”
“수리수리 마수리  수리수리 마수리 수리수리 마하수리 …”

갑자기 마술사는 예전의 그로 돌아간 듯 보였다.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무대 정면 꼭대기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이봐, 조명이 왜 이 모양이야!”

앞머리를 일자커트한 여자아이에게 “네가 내 마술이로구나”하고 웃어주려던 마술사는 잠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무대 앞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리수리 마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