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불안하니, 난 돈이 보여 – 중경삼림

중경삼림 : 임청하, 금성무, 양조위, 왕정문 : 왕가위

김하늘과 유지태가 주연한 영화 ‘동감’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1999년 12월 31일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대요’ 들뜬 표정의 김하늘을 쳐다보는 동아리 선배들의 얼굴 ‘어린 것이 어쩌다 …’ 꼭 그런 표정이다.

혹시 ‘1999년 12월 31일’ 기억나시는지? 이 날을 앞두고 기분이 어떠했는지도 생각이 날테고, 월드컵때에도 나타나 놀라게 했던 ‘휴거론자’도 기억이 날 법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사람. ‘노스트라다무스’ 솔직하게 말해, ‘은근히 겁도 났다’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나 싶기도 하다. ‘설마 아니겠지’하면서도 속으론 입이 바짝 타 들어 간다는 사실.

‘아직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그게 가장 공포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더 보기 “넌 불안하니, 난 돈이 보여 – 중경삼림”

양치기 소년과 先物거래 – 플레전트 빌

플레전트 빌 – 토비 맥과이어, 리즈 위더스푼 : 게리 로스

멀쩡한 차를 놔두고 자전거로 산을 넘는 사람들이 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는지 까마득한 높이에서 돌맹이처럼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비싼 돈을 내가면서 말이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런 위험천만한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하기사 이들을 이상하게 볼 필요는 없다. 구한말 처음 테니스가 도입되었을 때, ‘그렇게 힘든 것은 아랫것들을 시키지 뭣하러 땀을 흘리냐’던 양반님네들과 익스트림 스포츠를 ‘돈 내고 뭣하러’라 생각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사는 일이 뭐 하나 딱부러지게 맘에 드는 것이 없는 젊은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데이빗(토비 맥과이어분) 그에게 있어 유일한 낙이란 TV 시트콤 ‘플레전트 빌’을 보는 것 뿐. 그곳 사람들의 교양있는 말투와 따뜻한 눈길은 데이빗에겐 동경의 대상이다. 게다가 늘 유쾌한 일만 일어나는 플레전트 빌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고 유토피아였다. 눈 감고 던진 농구공이 항상 ‘골 인’이니 이 어찌 신나지 않을쏘냐.
(그리 멀지 않은 훗날 우리는 그가 빨갛고 파란 타이즈를 입고 이 빌딩 저 빌딩을 날아다니는 신나는 모습을 볼수 있게 된다. ‘스파이더 맨’에서 ^^)

그러나 그의 녹록치 않은 동생 제니퍼 (리즈 위더스픈 분)에겐 플레전트 빌 사람들이나 데이빗이나 한심하기는 피차 매한가지다. 참을 수 없는 그곳의 촌스러운 패션과 머리 스타일. 게다가 거기 사람들이 키스 한 번 하는 것을 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또한, 그리 멀지 않은 장래, ‘엘르’라는 매우 트렌디한 이름의 멋쟁이 여성이 되어있슴을 알고 있다. ‘금발이 너무해’에서 말이다.)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결혼들은 하는지 … 특기사항이 ‘남자친구와의 진한 데이트’인 그녀에게 플레전트 빌. 그곳은 ‘감옥’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놓고 다투다 리모콘을 망가뜨린 두 남매앞에 난데 없이 나타난 청소부 노인. ‘금 리모콘 주까, 은 리모콘 주까?’하듯, 리모콘 한 개를 던져주고는 사라진다. 여하간 남매는 이 새로운 리모콘을 켠다. 그 순간 … 이들 남매는 TV속의 흑백 세상 ‘플레전트 빌’로 들어간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위험하기’때문이다. 어떻게 될지도 모를 확률이 평소의 생활에서보다 훨씬 높은 탓이다. 생각해보라. 살면서 발목에 묶인 끈이 끊어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번지점프대는 외롭지 않다 한다. -.-a)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위험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구태여 지금까지의 삶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게 대다수의 인간이다. 왜냐 ‘변화=위험’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여간, 조용하고 평화로운 플레전트 빌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튀기’ 시작한다. 그건 순전히 제니퍼의 공이다. 흰 손수건을 깔고 앉아 정담을 나누는 범생이 커플들의 아지트인 호숫가의 그녀. 들어는 보셨나? ‘쭈가리’라고.
(‘뽀뽀하다’의 80년대식 은어다. 동사는 ‘틀다’를 사용한다)

그랬다. 제니퍼 덕에 피부색이 ‘흑백’이 아닌 ‘살색’으로 바뀐 컬러인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플레전트 빌에 말이다.

하지만 플레전트 빌의 대다수, 소위 ‘메인스트림(주류)’은 여전히 흑백인간들. 이들은 컬러인간들을 핍박하기 시작한다. ‘사회전복을 기도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들의 저항은 매우 격렬했고 또, 조직적이었다.

‘왜’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변화가 두려워서 이기 때문이다.
감정과 행동을 조금씩 자제하면 그저께와 꼭 같은 어제 그리고 어제와 같은 오늘 또한 내일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변화를 받아들여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변화’가 마냥 부정적이지는 않건만 보통 사람들은 변화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게 마련이다.

금융상품중에 ‘선물(先物,futures)’라는 것이 있다. 파생상품의 한 종류로 미래에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약간의 돈을 들여 ‘예약’해 놓는 거래행위를 매매하는 상품이다. 앞으로 일어날 지 모르는 변화를 회피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선물’이다.

예를 들어 식용유를 만드는 A라는 회사가 있다고 하자. 식용유를 만들기 위해 A사는 외국에서 콩을 수입해야만 한다. 보통 콩 1톤의 가격이 1백달러라 고 하자. 식용유를 만들기 위해 A사는 필요한 예산의 규모와 제품 가격을 ‘톤당 1백달러’를 기준으로 맞춰놓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6개월쯤 후, 콩을 수입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콩값이 갑자기 천정부지로 뛰는 것이다.  이를테면톤당 3백달러까지 말이다. 물론 예를 들어서. 이런 경우 식용유 가격을 올리지 않는 한, A사는 손해를 고스란히 볼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미연에 막기 위해서 생각해 낸 것이 ‘先物’거래다.

쉽게 말해서 선물거래는  미래에 필요한 물건을 ‘지금’ 사두는 것이다.  만약 A사가 6개월짜리 콩 선물을 톤당 1백달러에 사두었다면 콩값이 제 아무리 폭등을 해도 A사는 무사태평할 수 있게 된다. 선물이 만기가 되는 6개월 후, A사가 콩 1톤을 1백달러에 살수 있도록 선물거래소가 보증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위험을 피하려는 행동을 ‘헷지(hedge)’라고 한다. 컬러있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마을 사람들은 마을 지키기 위해 ‘헷지’를 했던 셈이다. 그러고 보면 ‘헷지’라는 단어의 원뜻이 새롭다. ‘울타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속 깊은 말인 것 같다. 양치기 소년만 없으면 좋으련만 先物시장에도 양치기 소년은 있다고 한다. 문제다.

양치기 소년과 先物거래 – 플레전트 빌

Going concern의 열쇠, 경영권 승계 – 8월의 크리스마스

‘기업’의 또 다른 이름은 ‘Going concern’. 요즘 자주 듣는 ‘지속가능성’

8월의 크리스마스 – 한석규, 심은하 : 허진호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정도가 예외일까. ‘리더’는 중요하다. 요즘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해갈 때에 혹은 변화의 폭이 깊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용장밑에 약졸없다’는 속담도 리더의 중요성을 말하는 다른 측면의 관찰이다.

하지만 무심한 것이 세월이라듯 유능한 리더도 언젠가는 그 자리를 물려줘야만 한다. 천년만년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 리더도 없다. 신이 아닌 이상에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조직의 리더는 언젠가는 바뀐다.

문제는 아무 대책없이 ‘어, 누가 이일을 해야하지?’라고 뒷북을 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자들은 유능한 리더가 자리에서 물러나기만을 바란다. 냉정한 표현이긴해도 말이다. 하지만 조직에서의 리더가 차지하는 역할이 크듯 그 리더의 자리를 이을 사람을 양성하는 것 또한 엄청 중요한 일이된다. 그래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도 ‘철인정치’를 위해서 ‘차세대 리더는 이렇게 길러야 하느니라’라는 방안을 후세에 알려주기도 했다.

굴지의 대그룹이든 작은 동네 사진관이든 리더가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하고 치밀하게 준비를 한다. 이런 리더의 승계과정이 원만치 못한 사례를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 잘 유지되어 오던 회사가 후계자들끼리의 암투에 의해 사세가 기울거나 몇 개의 작은 회사로 나누어 지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호사가들은 심심풀이 안주감으로 만들기도 한다. 유능한 리더를 양성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는 조직은 ‘쭈욱 갈(going) 수’ 있다. 대표적인 영리조직인 ‘기업’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중 하나가 ‘Going concern(계속 기업)’인 것도 그런 까닭일지 모른다.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업은 제대로된 기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타나는 단어다.

‘경영의 신’이라 추앙받기도 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CEO(최고경영자)인 잭웰치 회장은 GE(General Electric)의 수장이었다.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이 기업의 설립자는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 그만큼 오랜 시간을 이 기업은 생존해오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 ‘리더를 길러내는 조직문화가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잭 웰치 회장도 ‘GE의 경영자는 대체로 유능하다는 믿음
에 덕을 보고 있다’고 냉정하게 말하는 사람들 또한 있다. 아뭏튼 ‘리더’를 길러내는 것은 기업이나 조직이 ‘영속성’을 가질 수 있는 데에 핵심적인 사안이다.

언제 컴백할 지가 궁금한 여배우 심은하와 언제봐도 목소리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배우 한석규가 주연한 잔잔한 영화가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어떤 이는 이 제목을 놓고 ‘아, 호주 이민2세들의 사랑 이야기다’라고 말해 주위를 침묵하게 했다는 믿기 어려운 일도 있었다.

꽤 들어보이는 듯한 미혼인 남자 정원(한석규 분). 그는 한적하고 고즈넉한 동네어귀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 어느날 그의 사진관으로 젊은 여자가 찾아온다. ‘아저씨 필름 뽑아주세요’라며. 그녀의 이름은 다림(심은하 분). 모든 대한민국 운전자들을 떨게하는 공포의 자주색 유니폼. 그녀는 ‘주차단속요원’이었던 것이었다.
직업의 특성상 그들은 자주 만날 수 있게 된다. 어느 날인가 땀에 젖어 지친 몸을 이끌고 사진관으로 들어선 다림.

정원은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선풍기를 그녀로 향하게 한다. 다림은 정원의 관심을 쐬며 잠이 살짝 든다. 바라보는 정원. 둘의 사이엔 조금씩 관심이 쌓여간다. 국경도 넘는다는 사랑이 둘의 사이를 건너뛰지 못할까.

아쉽기는 하지만 요즘 영화는 서로 사랑하는 주인공을 이어주지 않고 끝을 맺어버리는 경향이 잦은 것 같다. ‘8월의 크리스마스’도 예외는 아니다. 서로 사랑하게 해놓고는 말이다. 감독에게는 잔인한 면도 있어야 하나보다.

겨울의 어느날 정원은 유리창 밖으로 다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녀의 뒤에서. 그 안타까운 표정은 금방 눈물이라도 떨어질 것 같다. 그러고보니 한석규라는 배우는 유리 근처에서 참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나한테 이러죠’라는 눈물가득한 표정으로 자동차 앞유리에 얼굴을 대고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장면을 기억해보자. ‘초록물고기’의 막둥이. 그 멋진 배우도 한석규다.

아뭏튼 정원은 죽는다. 이것도 모르는 다림은 마음을 내서 편지를 쓴다. 기다려도 아무런 대답이 없는 그에게 화가 난 다림. 사진관의 유리창에 돌을 던지는 적극적인 테러행위도 해보지만 다림은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눈물을 훔친다. 그녀는 정원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옆에서 얘기라도 해주련만. ‘죽었어요. 이제 다 소용없어요’라고.
쓸데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눈물이 날때면 주로 손목부분으로 눈물을 닦는 것 같다. 여자는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남자는 손등 아랫부분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정원이 죽기전 자신의 사진을 찍는 장면이 있다. ‘태연한 척 웃고 있어도 너의 마음 알아’ 영화의 주제가중 한 소절이다. 나중에 다림이 자기 맘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알고 그랬을까? 죽어가던 정원은 미소를 띤 사진을 남긴다. 슬픈 것인지 행복한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가끔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장면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거기서 어떻게 될까하고 말이다. 정원이 죽었으니 사진관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영화는 ‘디테일하고 담담한 장면묘사가 일품’이라는 평도 들었다. 사진관 사정을 디테일한 감독이 빼먹었을리 없다.
사진관 사장 정원은 머잖아 자신이 물러나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사진관은 계속 되어야 했다.

그는 어떻게 사진관의 영속성을 지켰을까? 정원이 ‘경영권을 어떻게 승계시킬까’에 대해서 고민하는 장면도 이 영화에는 있다. 아버지나 누이동생이 사진관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그가 고민했다는 말이다. 나이 드신 탓일까 자꾸 말귀를 잃어버리는 어버지에게 화도 내보지만 그는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강구한다. 직업을 활용해 그는 꼼꼼하게 사진을 찍어가며 매뉴얼을 만든다. 그 덕일까. 그의 아버지는 나중에 출장촬영을 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된다. 경영권 승계가 무난하게 이뤄졌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정원은 경영권을 성공적으로 전수한 유능한 CEO이기도 했다.

‘내가 아니면 안되’라고 생각하는 것은 CEO의 큰 착각일 수도 있다. 진정 유능한 사람은 ‘없어도 표시가 나지 않는’ 그런 사람일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MBWA’형이라는 경영스타일도 있다고 한다. 이말은 ‘Management By Wandering Around’의 약어다. 풀이해보면 이렇다. ‘어슬렁 거리며 이 부서 저 부서를 불쑥불쑥 어슬렁거리는 한량 같은 CEO’다. 하지만 이 유형은 ‘그저 어슬렁거리기만 할뿐’인 CEO를 말하진 않는다. 머리속에는 예리하게 조직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고도의 수를 가진 CEO를 말한다.

Going concern의 열쇠, 경영권 승계 – 8월의 크리스마스